올해 내가 가장 애정하는 카메라 폰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vivo X300 Ultra다. 물론, 당장 지갑을 텅 비게 만들 역대급 가격표를 달고 나왔다는 점은 뼈아프지만 말이다. 몇 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글로벌 시장에 상륙한 이 녀석은, 괴물 같은 카메라와 전문가급 영상 촬영 옵션, 짱짱한 배터리 수명, 그리고 유럽 시장 한정이지만 1TB라는 광활한 저장 공간까지 탑재해 그야말로 제대로 홈런을 쳤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태산 같이 솟아오른 엄청난 두께의 카툭튀와 무겁고 둔탁한 바디, 장시간 무거운 작업을 돌릴 때 느껴지는 스로틀링, 그리고 눈 튀어나오는 가격은 분명한 타협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두 세대 동안 중국 내수용으로만 머물며 애간장을 태웠던 전작들의 명성을 이어가기엔 충분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Ultra라는 이름값을 증명하는 카메라 시스템
이 비싼 돈을 주고 Ultra 모델을 사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카메라 경험 하나로 귀결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전히 기본 ‘비비드’ 컬러 프로파일은 채도와 다이내믹 레인지를 너무 끌어올리는 경향이 있어서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내추럴’ 모드로 틀면 쨍한 느낌을 확 죽이면서도 씬의 대비를 기가 막히게 살려낸다. 전작들처럼 프로세싱이 과하게 들어간 티가 나지 않고 출력물이 한결 선명하고 자연스러워진 점이 반갑다.
특히 올해 도입된 커스텀 컬러 프로파일 기능은 꽤나 영리하다. 베이스 프로파일을 고른 뒤 노출, 채도, 하이라이트, 섀도우, 그레인, 샤프니스 등 12가지 설정을 입맛대로 주물러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이 세팅을 QR 코드나 텍스트로 온라인에 공유할 수도 있다. 내가 대단한 미적 감각을 가진 건 아니지만, 그레인을 잔뜩 먹인 세팅에 400mm 렌즈 조합을 물리니 꽤나 감성적인 결과물이 나와서 마음에 쏙 들었다.
하드웨어 스펙은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다. 1/1.12인치 크기의 2억 화소 소니 LYT-901 메인 카메라는 현재 스마트폰에 탑재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200MP 센서다. 작년 X200 Ultra와 마찬가지로 35mm 환산 화각을 채택했는데, 일반적인 안드로이드 폰카에 비해 약 1.5배 당겨서 찍히는 셈이다. 노이즈 억제력은 이미 예술의 경지에 올랐고, 풍부한 디테일과 훌륭한 화질을 뽑아낸다. 무엇보다 이 35mm 화각 특유의 쫀득한 프레임 구성 덕분에 흔한 24mm 렌즈들보다 훨씬 깊이 있는 인물 사진을 건질 수 있다.
망원의 경우 2024년 X100 Ultra에 처음 데뷔했던 2억 화소 85mm 잠망경 렌즈와 근본적으로 같은 구성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vivo 측 설명에 따르면 ISOCELL HPO 센서를 새롭게 적용했고, 스냅샷 모드에서 60fps 자동 추적을 지원한다고 한다. 나는 여전히 이 망원 카메라의 노예다. 놀라운 해상력과 기분 좋게 얕은 피사계 심도, 그리고 전반적으로 쾌적하고 빠른 오토포커스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다. 광량이 훅 떨어지는 저조도 환경에서는 디테일이 뭉개지는 현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미지 자체는 꽤 밝게 유지되며 10배 줌에서도 종종 예상치 못한 수준의 디테일을 건져내곤 한다. 아, 이 잠망경 렌즈로 찍는 접사 퀄리티는 여전히 일품이다.
팬 에디션(FE)의 정석을 다시 쓰다, V70 FE
X300 Ultra가 스펙 덕후들의 지갑을 노리는 무자비한 플래그십이라면, vivo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꺼내든 또 다른 카드는 전혀 다른 매력을 뽐낸다. 바로 올해 미드레인지 시장에서 가장 파격적인 기기 중 하나로 꼽히는 V70 FE다. 이름의 FE가 ‘Fashion Edition’을 뜻하는 만큼, 이 녀석의 외관은 상당히 도발적이면서도 영리하다.
7000mAh라는 무식한 용량의 배터리를 때려 박고도 두께 7.6mm, 무게 200g 선에서 타협을 봤다는 건 칭찬해 마지않을 부분이다. 손에 쥐었을 때 생각보다 훨씬 슬림하게 감긴다. 각진 플랫 프레임은 요즘 트렌드에 딱 맞는 모던한 느낌을 주고, IP68/IP69 등급의 방수방진 설계로 실용적인 내구성까지 챙겼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단연 오로라 퍼플(Northern Lights Purple) 모델의 야광 백패널이다. 빛에 노출되면 어두운 곳에서 은은하게 발광하는 패턴이 생기는데, 남들과 똑같은 스마트폰 디자인에 질린 사람들에게 이만한 셀링 포인트도 없다. 무광 텍스처 마감 덕분에 지문도 잘 안 묻어 실사용 시 꽤나 쾌적하다. 전원과 볼륨 버튼은 손가락이 닿기 딱 좋은 위치에 있고, SIM 트레이와 USB-C 포트도 대칭에 맞게 깔끔하게 정렬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스타일과 인체공학, 내구성의 밸런스를 기가 막히게 맞췄다.
눈이 즐거운 디스플레이와 타협할 줄 아는 성능
전면을 꽉 채운 6.83인치 1.5K AMOLED 디스플레이는 이 가격대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웃돈다. 해상도는 1260×2800에 120Hz 주사율을 지원하며, 표면은 다이아몬드 실드 글라스로 코팅해 흠집에 대비했다. 색 작업용으로 완벽하게 캘리브레이션 된 패널은 아니지만, HDR10+를 지원하고 색감이 아주 쨍해서 유튜브 프리미엄이나 넷플릭스 콘텐츠를 소비하기엔 최적이다. 엣지 스크린이 아닌 플랫 패널을 탑재한 것도 실제 사용 편의성 면에서는 큰 플러스 요인이다.
무엇보다 이 화면이 진가를 발휘하는 건 야외에서다. 자동 모드 기준 최대 1900니트까지 치솟는 피크 밝기 덕분에, 한낮의 직사광선 아래에서도 화면 속 글씨가 선명하게 읽힌다. 동급 기기들과 비교하면 확실한 업그레이드 체감이 온다.
내부로 들어가면 미디어텍 디멘시티 7360 칩셋이 탑재되어 있고, 8GB/128GB부터 12GB/256GB까지 세 가지 옵션을 제공한다. 성능은 철저하게 타겟층의 니즈에 맞춰져 있다. 웹 서핑, SNS, 가벼운 멀티태스킹이나 영상 시청 같은 일상적인 작업은 쾌적하게 돌아가고, 콜 오브 듀티 모바일 같은 게임도 프레임 드랍 없이 무난하게 소화해 낸다.
다만, 작정하고 사진을 연사하거나 빡센 멀티태스킹, 영상 편집을 돌리기 시작하면 시스템이 헉헉거리는 게 손끝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폰의 포지션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드코어 게이머가 아니라 일상적인 용도로 폰을 쓰는 캐주얼 유저들에게는 이 정도 성능이면 차고 넘치니까.
소프트웨어와 미래를 위한 투자
V70 FE는 안드로이드 16 기반의 OriginOS 6를 탑재하고 출격했다. UI 애니메이션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시각적인 완성도도 눈에 띄게 성숙해졌다. 취향에 맞게 시스템 곳곳을 뜯어고칠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자유도도 여전하다. 여기에 더해 vivo가 OS 업데이트 4년, 보안 패치 6년을 보장한다고 못 박았으니 기기 수명 걱정은 한시름 덜었다. 작문 보조 기능을 포함한 OriginOS의 AI 스위트도 쏠쏠한 재미를 더한다.
결국 올해 vivo의 행보는 극단적으로 나뉘면서도 흥미롭다. 가격표에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 카메라의 끝을 보고 싶다면 X300 Ultra가 최고의 장난감이 될 것이고, 넉넉한 배터리에 통통 튀는 디자인으로 무장한 탄탄한 일상용 폰을 찾는다면 V70 FE가 그 해답이 될 것이다. 어느 쪽을 쥐어 들든, 각자의 위치에서 본연의 역할을 200% 해내는 기기들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