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명가의 반란, 물리적 AI 시대의 관절을 지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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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에만 쏠려 있던 국내 증시에 새로운 주도주가 부상하는 분위기다. 이른바 ‘가전은 LG’라는 오랜 꼬리표를 떼어내고 로봇과 물리적 AI(인공지능)에 대한 기대감을 등에 업은 LG전자의 심상치 않은 독주 이야기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심의 메모리 반도체 랠리가 시장을 이끌었다면, 이제 그 온기가 로봇과 액추에이터 같은 AI 하위 산업으로 번져나가는 낙수효과가 본격화되고 있다.

’20만 LG전자’의 탄생과 그룹주 전반의 훈풍

지난 14일 기준 LG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13.38% 폭등하며 단숨에 21만 7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장중 처음으로 20만 원 고지를 뚫어내며 주식 시장에 ’20만 LG전자’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각인시켰다. 최근 한 달간의 상승률만 무려 88.2%에 달한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37.4%)의 두 배를 가뿐히 웃도는 수치다. 연초 10만 원 언저리에서 횡보하던 주가가 단기간에 두 배 가까이 뛴 셈이니 시장의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러한 폭발적인 랠리는 비단 LG전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한 달간 LG디스플레이가 23.9%, 비상장사에서 시장의 기대를 받는 LG CNS가 41.4% 급등하는 등 훈풍은 그룹주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코스콤 ETF 체크에 따르면 ‘TIGER LG그룹+펀더멘털’ ETF는 최근 일주일 동안 10.5%의 수익률을 냈다. 같은 기간 5%대 미만에 그친 KODEX 삼성그룹(4.81%), WON 두산그룹포커스(0.59%), PLUS 한화그룹주(0.62%) ETF의 성과를 가볍게 따돌렸다.

물리적 AI의 반도체, ‘액추에이터’에 꽂힌 외인 자본

이런 재평가의 기저에는 로봇 사업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올해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로봇 액추에이터 브랜드 ‘LG 액추에이터 엑시움(Axium)’을 전격 공개한 이후, LG전자는 관련 사업 확장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액추에이터는 로봇의 관절과 근육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으로, 업계에서는 ‘물리적 AI 시대의 반도체’라 부를 만큼 휴머노이드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디바이스다. 최근 엔비디아가 휴머노이드 플랫폼 사업을 노골적으로 강화하면서 글로벌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관심이 뜨거워진 상황이다. 기존 가전과 모터, 정밀제어 기술력으로 뼈대가 굵은 LG전자가 이 구동기 시장에서 압도적인 잠재력을 발휘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자연스럽게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도 매섭다. 이달 1일부터 14일까지 외국인들은 대형 반도체주를 넘어 LG디스플레이(1653억 원), LG전자(1525억 원), 그리고 LG에너지솔루션(1129억 원) 등을 줄스레 쓸어 담았다. 인공지능의 실체가 소프트웨어를 넘어 하드웨어로 옮겨가면서 투자 포트폴리오 역시 로봇과 AI 하위 섹터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외형보단 체력, 펀더멘털 개선의 시그널들

특히 외국인의 러브콜을 받은 LG에너지솔루션의 재무 흐름을 보면 그룹 전반의 체질 개선 양상이 읽힌다. 29일 공시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의 작년 한 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조 3461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133.9%나 뛰어올랐다. 매출이 23조 6718억 원으로 7.6% 줄어들고, 순이익 역시 808억 원으로 76.1% 급감한 것과는 대조적인 이익 성장세다. 4분기 기준으로는 1220억 원의 영업손실과 7725억 원의 순손실, 6조 141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적자 상태이긴 하지만, 전년 동기(2255억 원 영업손실)와 비교하면 그 폭을 확실히 줄여나가고 있다. 당장의 외형 확장이나 화려한 마진보다는 뼈를 깎는 비용 통제와 수익 구조 정례화에 무게를 두는 과도기적 펀더멘털 개선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다.

증권가 역시 발 빠르게 눈높이를 고쳐잡는 중이다. 14일 하나증권은 원가 구조 개선과 마케팅 효율화로 펀더멘털이 단단해진 데다 로봇 사업의 가치가 드디어 주가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며, LG전자의 목표 주가를 기존 16만 원에서 23만 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물리적 AI와 AI 모빌리티 영역에서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와의 잠재적 협력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시장의 기대감은 한동안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로봇 액추에이터 양산 라인이 본격적으로 돌아가고 신사업이 궤도에 오르는 시점, AI가 실체를 입는 이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누가 다음 산업의 관절을 통제할 것인지 그 치열한 샅바싸움은 이미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