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최근 그룹 2인자로 통하던 정현호(65) 부회장의 용퇴를 발표하며 대대적인 ‘세대교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재용 회장이 주도하는 인적 쇄신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다가오는 후속 인사에서 ‘젊은 삼성’ 기조가 얼마나 강력하게 적용될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번 인사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최연소 승진’의 아이콘인 노태문(57) 모바일경험(MX) 사업부장(사장)의 부회장 승진 여부다.
‘초고속 승진’의 역사, 엔지니어 신화 쓴 노태문
1968년생인 노 사장은 삼성전자 내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포스텍 전자전기공학 박사 출신의 정통 엔지니어인 그는 1997년 입사 이래 줄곧 무선사업부에서 경력을 쌓으며 ‘최연소’ 타이틀을 독식해왔다. 입사 10년 만인 2007년 만 39세의 나이로 임원(상무) 배지를 달았고, 갤럭시S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수상하며 1직급 특별 승격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후 44세에 부사장, 50세에 사장 자리에 오르며 삼성의 성과주의 인사를 증명해 온 산증인이다.
현재 노 사장은 MX사업부장은 물론 품질혁신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지난 4월부터는 완제품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까지 대행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그가 이번 연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해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과 함께 ‘투톱 체제’를 구축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실적으로 증명한 리더십, 반도체 부진 속 ‘구원투수’ 역할
노 사장의 승진설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가 이끄는 MX사업부가 삼성전자의 실적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그가 사업부장에 취임할 당시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로 위기감이 감돌았으나, 이후 매출은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2021년 109조 원대였던 매출은 2022년 120조 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3분기 누적 매출만 이미 100조 원을 넘어섰다.
반도체(DS) 부문이 IT 시황에 따라 수조 원대 적자와 흑자를 오가는 등락을 거듭할 때, MX사업부는 탄탄한 실적을 유지했다. 특히 지난 7월 출시된 ‘갤럭시 Z 폴드7·플립7’의 흥행과 갤럭시 S25 시리즈의 꾸준한 판매 호조가 주효했다. 증권가에서는 카메라 성능 강화와 AI 기능 탑재가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하며, 올해 MX사업부 매출이 120조 원대 후반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MX사업부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이제는 부회장급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장 직급인 노 사장이 동급인 개발실장이나 타 사업부장을 이끄는 것보다, 부회장으로서 무게감 있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조직 운영에 효율적일 것이라는 시각이다. 건국대 김준익 교수는 “삼성의 성과주의와 혁신 방향성을 고려할 때 노 사장의 부회장 승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했다.
모바일에서 네트워크까지, AI 생태계 확장 가속
노 사장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생성형 AI’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갤럭시 S24를 기점으로 앱 중심의 사용 환경을 AI 에이전트 중심으로 전환하며 모바일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종대 황용식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파도를 넘는 젊은 패기”라고 표현하며, 모바일에서 입증된 AI 전환 역량이 삼성의 다른 제품군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삼성의 AI 리더십은 단말기를 넘어 통신 네트워크 인프라로도 확장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KT와 협력하여 상용 네트워크에 ‘AI 기반 무선전송망(AI-RAN)’ 최적화 기술을 검증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시뮬레이션 단계를 넘어 실제 사용자가 이용하는 상용망에서 기술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사용자 중심의 통신 혁신과 6G 미래 준비
삼성전자와 KT가 검증한 이 기술은 전체 네트워크가 아닌 ‘사용자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AI가 사용자의 이동 경로나 사용 패턴을 학습하여 발생할 수 있는 통신 문제를 사전에 예측하고, 실시간 무선 환경에 맞춰 설정을 자동으로 변경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끊김 없는 안정적인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정진국 부사장은 “이번 성과는 AI가 실제 상용망에서 사용자 경험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라고 강조했다. 양사는 이번 검증을 바탕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나아가 6G 시대의 핵심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협력을 지속할 계획이다.
결국 이번 삼성의 인사는 단순한 인물 교체를 넘어, 모바일 기기부터 네트워크 인프라까지 아우르는 ‘AI 기술 초격차’를 위한 전열 정비로 해석된다. 정통 엔지니어 출신 리더십과 재무 전문가의 조화, 그리고 현장에서 입증되고 있는 AI 기술력이 맞물려 삼성전자가 보여줄 ‘미래 청사진’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